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토마스 상카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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=== 사망 === 그러나 이런 그의 [[개혁]] 정책들은 주변국의 [[독재자]]들[* [[코트디부아르]]의 [[펠릭스 우푸에부아니]], [[가봉]]의 [[오마르 봉고]], [[토고]]의 [[냐싱베 에야데마]], [[말리]]의 [[무사 트라오레]].]에게는 위협적으로 비쳐졌다. 이들은 그의 존재로 인해서 자국에서도 개혁세력들이 들고 일어나 자신들의 권좌를 위협할 것을 두려워했다. 다른 한편으로 [[미국]]에서도 그를 위험인물로 간주했다. 그는 성공적인 사회주의 개혁가였고 미국은 그가 부르키나파소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전체에 [[반미]]적인 사회주의 개혁을 퍼뜨릴 것을 우려했다. 결국 부르키나파소 인근 국가들의 독재자들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고 미국 CIA는 그의 정치적 동료인 [[블레즈 콩파오레]][* 콩파오레도 사실 상카라의 정책에 대해 못마땅해했고 상카라에게 여러 차례 철회 건의를 했으나 상카라는 수차례 무시하였고 급기야 둘은 서로 정적이 되었다.]를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.[* 당시의 미국 대통령은 [[로널드 레이건]]이었는데 반미를 기치로 내걸거나 사회주의 정권을 내세우던 제3세계 국가들에게 무력사용을 불사했으며 [[리비아 공습]], [[그레나다 침공]], [[니카라과]]의 반군 조직인 [[콘트라#s-1]] 지원 등을 지시하였다. 이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 [[이란-콘트라 사건]]이다.]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이라도 했던지 1987년 장 지글러(Jean Ziegler)[* 스위스의 좌파적 사회학자로, 2007년 《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》라는 책을 집필했다. 이 책이 큰 화제가 되면서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했고 [[서울대학교]] 추천 도서에서 매년 순위권에 들어갈 정도로 한국에서의 인지도도 상당한 편이다. 이 책에도 해당 일화를 포함해 상카라의 이야기가 길게 수록되어 있다.]를 만난 자리에서 "[[체 게바라]]는 몇 살까지 살았나요?"라고 물었다고 한다.[* 지글러는 "39세 8개월"이라고 대답했고 상카라는 '나도 그때까지 살 수 있을까요?'라고 물었지만 그해 38세 생일을 2개월 앞두고 죽는다.] 평소에 "영웅의 피는 혁명의 토양을 기름지게 한다"라며 말을 하곤 했으며,[* "Le sang des héros fertilise le sol de la révolution."] 체 게바라 20주기 추모식에서는 "혁명가 개인을 죽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사상은 죽일 수 없다."는 [[유언]]을 남겼다.[* « En tant qu'individus les révolutionnaires peuvent être tués, mais vous ne pouvez pas tuer les idées. »][* [[쿠바 혁명]] 초기 [[피델 카스트로]]를 살해하려던 부하를 제지한 군인이 한 말이기도 하다. [[http://www.koreahiti.com/news/articleView.html?idxno=10622]]] 1987년 10월 15일 CIA에 포섭된 [[블레즈 콩파오레]]는 반혁명 쿠데타를 단행했고 그는 반란 진압 도중 결국 수도 와가두구에서 동료들과 함께 붙잡혀 처형되었다. 그가 존경했던 혁명가 체 게바라를 떠올리게 하는 최후였다. 콩파오레의 퇴진 후인 2015년 10월에 그의 유해가 발굴된 후 검시결과에 의하면 수십발의 총탄을 맞았다고 하며 심지어 콩파오레가 직접 그의 사형을 집행한 것으로 밝혀졌다. 그러고는 콩파오레는 그의 아내와 자녀 2명에게 '상카라가 자연사했다'는 사망 증명서를 발급하기까지 했으며 뻔뻔하게도 이 조작된 사인을 언론에 공표하기까지 했다. [[블레즈 콩파오레]]는 그를 본인의 손으로 처형시킨 후에 대통령직에 올랐고 자신이 그의 [[사형]]을 집행하라는 지시는 내리지 않았다고 부인했지만 CIA의 권고대로 그간 실행되던 개혁정책을 모조리 이전으로 되돌리고 [[IMF]]와 [[세계은행]]에 재가입한 후 '파탄난'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'절박하게 필요한' 기금을 가져왔다. 이후 부르키나파소는 단 한 번도 상카라 시절의 경제와 민생 수준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외채와 해외 자본에 종속되어 세계 최빈국으로 남아 있다. 단 4년 동안의 짧은 통치에도 경탄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으니 만약 그가 장수하여 산업화에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며 성공했더라면 독재에 대한 비판은 둘째치더라도 부르키나파소가 아프리카에서 그럭저럭 살만한 중진국으로 발돋움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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